지금으로부터 딱 10년전인 2016년 이맘때다.
나는 광화문에 있는 모보험사의 프로젝트 PM을 맏고 있었고, 점심식사 후 산책길에 길건너 포시즌스 호텔에 수많은 취재 차량들이 오가며 분주한 모습을 궁금한 표정으로 갸웃거렸다.
그땐 몰랐다. 그때 그 장면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2026년 5월 한국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발표한 델파이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전문가 26명이 전망한 한국 초급 개발자 채용 감소율은 77%다. 4분의 3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한 중견 SW 기업은 창립 25년 만에 처음으로 개발직 신입을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이 변화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가지 사실부터 짚어야 한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한국은 AI·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에 국가 차원의 풀 베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곡선을 시간순으로 추적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1편은 2016년 알파고에서 2019년 첨단학과 정책까지, 한국이 어떻게 풀 베팅 자세를 잡았는지를 다룬다. 그 베팅이 어떻게 폭발하고 무너졌는지는 후속 편에서 이어진다.
2016년 3월, 알파고가 시작 신호를 쏘아 올렸다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5번기 대국을 펼쳤다. 결과는 알파고의 4승 1패 완승이었다. 전 세계 바둑 전문가와 컴퓨터 과학자들의 예상을 뒤집은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이 사건의 무게는 단순한 바둑 경기 결과를 훌쩍 넘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일상적인 화두로 받아들인 분기점이었다. 일주일 사이 모든 신문이 4차 산업혁명을 헤드라인에 올렸고, 정부는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같은 해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는 한국의 AI 소프트웨어 기술 수준을 미국 100 기준 75.0이라고 발표했다. 일본 89.3보다 뒤처지고 중국 71.9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평가였다. 정부는 300억 원 규모의 지능정보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와 기업형 지능정보기술연구소 설립을 곧바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듬해인 2017년 9월 26일,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장병규 위원장을 비롯한 민간위원 20명이 위촉됐고, 1차 회의는 같은 해 10월 11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렸다. 위원회는 4차 산업혁명 대응 기본정책방향 수립을 첫 의제로 다뤘다. 이때부터 한국 정부의 산업 정책 어휘 안에 “4차 산업혁명”, “지능정보기술”, “초연결 사회”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예측의 역설 — 단순 노동이 먼저 대체될 것이라 했지만
같은 시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도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2020년까지 전 세계에서 71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200만 개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한국고용정보원도 같은 해 비슷한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청소원·주방 보조원 같은 단순 노동직이 가장 먼저 AI와 로봇에 대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예측 안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코딩과 데이터 분석 같은 영역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재로 분류되었다. 한국 정부와 대학과 기업이 이 예측을 그대로 받아 정책과 자원을 배분하기 시작한 것이 이후 5년 흐름의 뼈대다.
2017~2019년, 빅데이터와 IoT가 IT 업계를 견인했다
알파고 충격 이후 한국 IT 업계의 키워드는 매년 바뀌었다.
그러나 그 흐름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모두 개발자 수요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이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타버스까지. 4대 테마가 차례로 IT 업계의 자금과 인력을 빨아들였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빅데이터와 IoT였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출범 직후부터 데이터 경제 활성화 정책을 첫 의제로 다뤘고, 모든 대기업이 자체 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뛰어들었다. 삼성·LG·현대·SK·롯데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채용 공고를 줄지어 내놓았다. 스마트팩토리, 스마트시티, 커넥티드카 같은 IoT 응용 사업이 정부 예산 항목에 추가됐다. 이 시기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21세기 가장 섹시한 직업”이라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2012년 표현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블록체인 광풍과 그 잔여물
그 다음은 블록체인이었다. 2017년 5월 한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신조어가 처음 등장했고, 같은 해 하반기에는 한국이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상당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광풍이 불었다. 비트코인은 2018년 1월 7일 국내 거래소 기준 코인당 2,600만 원까지 치솟았다.
한국 정부는 그 사이 2017년 9월 ICO(암호화폐공개)를 전면 금지했고, 2018년 1월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가능성을 공식 언급하면서 시장은 폭락했다. 다만 그 폭락 속에서도 한 가지 흐름은 유지됐다. “블록체인 개발자”라는 새로운 직군이 만들어졌고, 카카오와 라인을 비롯한 대기업이 자체 블록체인 자회사를 설립하면서 관련 인력 채용을 이어갔다. 광풍은 꺼졌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일자리가 남았다.
알파고와 팬데믹 사이, 한국 SW 업계의 분위기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 SW 업계는 묘한 양극화 상태였다. 한쪽에서는 네이버·카카오를 비롯한 IT 기업이 빅데이터·AI·블록체인 인력을 대규모로 채용하기 시작했고, 우아한형제들 같은 기업은 2017년부터 우아한테크캠프를 운영하면서 자체적인 신입 개발자 양성 과정을 만들었다. NHN이 2013년 설립한 NHN NEXT를 시작으로 코드스테이츠, 멋쟁이사자처럼, 패스트캠퍼스 같은 부트캠프가 잇따라 문을 열었다. “개발자가 부족하다”는 기사가 매년 반복됐다.
다른 쪽에서는 정반대 풍경이 펼쳐졌다. 코딩 부트캠프나 국비 지원 학원을 졸업한 청년들 상당수가 SI(시스템통합)·SM(시스템관리) 업계로 흘러들어갔다. 빅테크와 동일한 직무 이름을 달고 있어도 야근 문화는 그대로였고, 연봉은 절반 수준이었다. ZDNet 코리아의 2021년 분석은 이 구조를 한 줄로 정리했다.
대학교와 각종 교육기관에서 배출하는 개발자의 수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배출되는 인력의 능력도 업계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진단이었다. 산업계는 실무에 곧장 투입할 수 있는 초중급 인재를 원했지만, 갓 졸업한 인력은 이론지식만 있는 상태였다. 채용 시장의 허리가 비어 있었던 것이다.
이 구조적 균열은 팬데믹이 도착하면서 한층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벌어진다. 인재 양성의 속도가 시장 수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태가, 비대면 호황을 만나 폭발하기까지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19년부터 시작된 대학 학과 신설 러시
정부의 첨단학과 정책이 본격화된 것은 2019년이다. “AI” 또는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학과 이름에 들어가면 첨단 분야로 인정받아 대학 입학 정원을 순증할 수 있게 됐다. 대학들에게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조건이었다. 전국 4년제 대학과 2~3년제 전문대학에 AI·소프트웨어 관련 학과가 우후죽순 신설되기 시작했다.

한양대는 2020년 인공지능학과를 신설한 뒤 2021년 인공지능융합대학으로 승격시켰다. 2024년에는 첨단분야 일반대학 정원이 1,829명 확대됐고, 서울대는 같은 해 첨단융합학부를 신설하면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학부 입학 정원을 218명 늘렸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이 증가한 것은 2000년 이후 24년 만의 일이었다. 분야별로는 반도체 14개 학과 654명, AI 7개 학과 195명, SW·통신 6개 학과 103명 등이 새로 만들어졌다.
학과의 실질은 따로 짚어둘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학과는 컴퓨터공학의 심화 분야인데, 학부 수준에서는 컴퓨터공학의 기초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빠듯하다. 본격적인 AI 연구는 대학원에서야 가능한 영역이다. 그러다 보니 학부 단계의 인공지능학과는 몇몇 과목을 제외하면 기존 컴퓨터공학과와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응용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가 인공지능학과로 이름만 바꾸는 사례도 흔했다. 학과 이름은 첨단이었지만, 양성 시스템은 정원 확대에 더 큰 무게를 두는 구조였다.
풀 베팅의 한계가 드러나기 전, 그 무엇도 멈추지 않았다
2016년 알파고 충격에서 2019년 첨단학과 정책까지 4년 동안, 한국은 AI·SW 인재 양성에 국가·대학·기업의 모든 자원을 쏟아부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매달 회의를 열었고, 정부는 부트캠프와 국비 지원 교육에 예산을 투입했다. 빅테크는 채용 규모를 매년 늘렸고, 부트캠프는 수강생을 모집하기만 하면 빠르게 채워졌다. 비전공자가 6개월~1년 만에 코더로 진로를 갈아타는 풍경이 일상이 됐다.
이 시기 한국이 그린 미래는 분명했다. AI는 단순 노동과 일부 화이트칼라 단순 직무(통번역·비서·문서 정리·금융 사무)를 대체할 것이고, 그 자리를 새로운 디지털 일자리가 채울 것이다. 그 디지털 일자리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그러니 모두 코딩을 배워라. 정부·대학·기업·교육기관이 같은 메시지를 5년 동안 일제히 내보냈다.
다만 한 가지 균열은 이미 보이고 있었다. 채용 시장의 허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 그러나 그 균열은 곧 도착할 거대한 사건 앞에서 잠시 가려진다. 2020년 1월, 코로나19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한국 IT 업계는 채용 역사상 가장 극적인 인플레이션을 마주하게 된다.
다음 편 예고 — 팬데믹이 만든 변곡점, 그리고 네카라쿠배의 폭주
다음 글 후속 2편에서 팬데믹이 한국 사회 전반과 IT 업계에 어떤 변곡점을 만들었는지 추적한다.
본 콘텐츠는 검색 및 뉴스, 보고서 등 공개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전문가적 견해이며, 실제 비즈니스 의사결정이나 실행 시에는 반드시 해당 분야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세돌-알파고 대결로 본 4차 산업혁명”, 2016.03.16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 및 제1차 회의 개최”, 2017.10.11
- World Economic Forum, “The Future of Jobs Report”, 2016.01
- 한국고용정보원, “4차 산업혁명 미래 일자리 전망”, 2017
- 한국경제, “가상화폐 규제 앞장선 한국…블록체인 업체들, ICO 위해 엑소더스”, 2019.01.25
- 우아한형제들 기술 블로그, “우아한개발자가 되기 위한 우아한테크캠프”, 2018.04.22
- ZDNet 코리아, “20년간 양성된 백만 IT인재는 어디로 갔나”, 2021.05.15
- 서울신문, “반도체·AI 첨단학과 정원 1829명 늘린다… 서울대는 30년 만에 증원”, 2023.04.27
- 파이낸셜뉴스, “[AI發 일자리 충격②] ‘코딩만 잘하면 취직 걱정 없다더니’…갈곳 잃은 신입 개발자”, 202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