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9일,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HMM 나무호가 외부 공격을 받았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했고, 한국은 ‘호르무즈 해방 프로젝트’ 참여를 공개적으로 요청받았습니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가 이 해협을 지나옵니다. 공급망의 가장 좁은 길목 하나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지난 두 달간 잇따라 대응책을 내놓았습니다. 운송비 차액 지원, 우회 항로 관세 특례, 중남미 외교 다변화, 신규 도입선 발굴까지 여러 카드를 동시에 꺼냈습니다.
다만 매일일보 4월 29일 기획 기사에서는 한 업계 관측으로 “실제로 탈중동을 달성하는 데에는 최소 2~3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인용됐습니다. 이는 한 연구자의 전망이고 실제 소요 기간은 산지·계약·인프라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거래선 변경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왜 그런지, 그리고 그 사이 한국 공급망은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정리해 봅니다.
정부 대책 — 한 달 사이 쏟아진 카드들
2026년 4월 17일부터 5월 8일 사이, 정부가 발표하거나 시행한 원유 공급망 대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시점 | 발표 주체 | 정책·회의명 | 내용 |
|---|---|---|---|
| 2026.4.17 | 산업통상부 | ‘원유 도입선 다변화 지원제’ 환급률 확대 한시 시행 | 4~6월 비중동산 도입 시 중동산 대비 운임 차액 100% 환급(기존 25%) |
| 2026.5.7 | 외교부 최준호 중남미국장 주재 |
정유업계 실무 간담회 (중남미·카리브 원유 협력) |
SK에너지·S-OIL·GS칼텍스·현대오일뱅크·대한석유협회와 중남미·카리브 원유 수급 확대 논의 |
| 2026.5.7 | 산업통상부 문신학 차관 브리핑 |
운송비 차액 지원 8월 연장 검토 공개 | 6월 종료 예정인 100% 환급 제도를 8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 중 |
| 2026.5.8 | 관세청 | ‘수입 운임 특례’ 시행 | 우회 항로 운임 상승분 과세 제외, 3월 1일 신고분부터 소급 적용 |
운송비 차액 지원 제도는 사실 2015년 ‘원유 도입선 다변화 지원제’로 도입된 것을 호르무즈 봉쇄 상황에 맞춰 확대한 것입니다. 기존에는 운임 차액의 25%만 환급했던 것을 100%로 올렸고, 적용 기간도 6월에서 8월로 연장하는 방안이 검토 중입니다. 정부가 그만큼 거래선 변경의 비용 부담을 의식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거래선 변경의 구조적 한계

장기 계약 구조
정유사들은 통상 수개월 전부터 공장 가동계획과 원유 도입계획을 세우고, 장기계약 물량과 현물 물량을 조합해 원유를 들여옵니다. 거래의 상당 부분이 장기 계약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단기간에 전체 물량을 다른 산지로 대체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수입선 다변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봉쇄가 해제되면 기존 원유 수입처에서 수입하다가 조금씩 캐나다나 미국, 아프리카 등지로 도입선을 바꿔야 하는데, 그러려면 원유 수입 계약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되지 않는다.”
—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4.29 매일일보 인터뷰
정유 설비 특성 — 한국은 중질유 처리에 맞춰져 있다
한국 정유사들은 지난 수십 년간 중동산 원유를 처리하는 데 최적화된 고도화 설비를 구축해 왔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랍 라이트, UAE의 두바이유 등 한국이 주로 수입해 온 중동산 원유는 API 30~33도의 중질유에 가깝고 황 함량이 높은 ‘Medium sour’ 계열입니다. 한국의 정제 설비는 이 특성에 맞춰 진화해 왔습니다.
거래선을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 산지별 원유 특성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흔히 “다변화하면 다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 지역 | 대표 산지 | 유종 | 한국 설비 적합도 |
|---|---|---|---|
| 중동 | 사우디 아랍 라이트, UAE 두바이유 | Medium sour(중질) | 최적 |
| 북미 | 미국 셰일, WTI | Light sweet(경질) | 일부 공정 비효율 |
| 캐나다 | 앨버타 오일샌드 | Heavy sour(초중질) | 별도 설비 보완 필요 |
| 중남미 | 베네수엘라·멕시코·브라질 | Heavy sour(중질) | 별도 설비 보완 필요 |
| 중남미 | 가이아나·에콰도르 | Light sweet(경질) | 일부 공정 비효율 |
| 아프리카 | 나이지리아·앙골라 | Light sweet(경질) | 일부 공정 비효율 |
| 러시아 | ESPO 블렌드(극동) | Light sour | 적합(제재 중) |
미국 셰일·나이지리아·가이아나의 경질 원유를 도입하면 한국 정유사의 고도화 설비 일부 공정이 비효율적으로 돌아갑니다. 반대로 캐나다 오일샌드나 베네수엘라의 초중질유는 처리 과정에서 별도 설비 보완이 필요합니다. 한국 정유사 설비는 중동산 중질유에 정밀하게 맞춰져 있어,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일정한 비효율이 따라옵니다.
“시설을 중질유 쪽에서 경질유 쪽으로 바꾸려면 굉장히 큰돈이 든다. 중질유와 경질유는 나프타가 나오는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석유화학 업체의 수익도 달라진다. 쉽게 설비를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4.29 매일일보 인터뷰
설비 전환 자체가 거대한 자본이 드는 작업인 데다, 정제 마진의 핵심인 휘발유·경유·항공유·나프타의 산출 비중이 산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정유·석유화학 업계 전체 수익 구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거래선 변경은 단순한 산지 변경이 아니라 정제·석유화학 산업 구조의 일부 재설계에 가깝습니다.
운송비와 운송 시간
거래선을 옮기면 운송비와 시간이 동시에 늘어납니다. 2025년 기준 평균 수송단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지역 | 수송단가(배럴당) | 운송 시간 |
|---|---|---|
| 중동산 | 1.87달러 | 약 20일 |
| 중동 외 평균 | 2.99달러 | 30~40일 |
| 미국산 | 3.93달러 | 40~50일 |
운송이 두 배 길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 문제가 아닙니다. 재고 부담, 운전자본, 보험료가 모두 함께 올라갑니다. 정부가 운임 차액 100% 환급을 결정한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북미산이 유럽으로 빠질 위험
5월 5일 에너지경제신문 보도가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를 짚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이 4월 한 달간 러시아 석유 시설을 최소 21회 타격하면서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13달러로 두바이유(105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유럽 지역 공급도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 정부 대책은 미주산(특히 북미)으로 옮겨가는 데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공급이 더 줄어들면 미국산 LNG·원유는 우선 가까운 유럽으로 향합니다. 2022년 러-우 전쟁 직후 미국산 LNG의 70~80%가 유럽으로 향했던 전례가 있습니다. 거래선 변경 카드 자체가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다음 카드 — 동북아 전용 도입선
에너지 업계 일각에서는 단순 거래선 변경을 넘어 새로운 도입선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가장 주목받는 후보는 동북아로만 수출이 가능한 세 지역입니다. 유럽까지 수출길이 너무 멀어 사실상 동북아 시장을 향할 수밖에 없는 곳들이라, 한국·일본·대만이 공동으로 인프라에 참여할 여지가 큽니다.
| 지역 | 한국 기업 참여 | 현재 상태 |
|---|---|---|
| 캐나다 BC주 키티맷 LNG | 한국가스공사(KOGAS) 지분 참여 및 물량 수입 | 1호 터미널 운영, 2호 준비 |
| 미국 알래스카 LNG | 포스코인터내셔널 지분 참여 및 물량 수입 계획 | 연 2,000만 톤 목표, 사업비 460억 달러 |
| 러시아 극동(블라디보스토크·사할린) | 미국 재무부 한시 거래 허가(5/16까지) | 서방 제재 중, 부분 거래 재개 가능성 |
러시아 극동(블라디보스토크·사할린)은 서방 제재로 교역이 중단된 상태지만, 미 재무부가 4월 17일 이전 선적된 러시아산 석유에 한해 5월 16일까지 한시적 거래를 허가하면서 부분적 거래 재개의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러시아 극동 수출 재개를 견인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외교 다변화 — 중남미 카드
5월 7일 외교부는 SK에너지·S-OIL·GS칼텍스·현대오일뱅크·대한석유협회와 실무 간담회를 열고 중남미·카리브 지역을 활용한 원유 공급망 다변화 가능성을 점검했습니다. 중남미·카리브는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약 19%를 보유한 지역으로, 한국은 2025년 기준 멕시코·브라질·에콰도르·가이아나 등에서 원유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다만 앞의 산지별 원유 특성 표에서 보았듯, 중남미 원유는 중질유(베네수엘라·멕시코·브라질)와 경질유(가이아나·에콰도르) 양극단으로 분포돼 있습니다. 거래선을 확대하려면 한국 정유사의 설비 운영 유연성도 동시에 확보해야 합니다. 단순 수입처 확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업의 응답 — 4대 그룹의 공급망 관리 전면 개편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4대 그룹은 지정학 리스크 상시화에 맞춰 공급망 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있다는 보도가 5월 초 매일일보 기획 기사로 나왔습니다. 단일 공급원 의존도 축소, 다층 재고 관리, 우회 항로 시뮬레이션, 협력사 위험 평가 통합이 핵심입니다.
실적 면에서는 의외의 반등도 보입니다. 4월 초까지 1조 원대 적자가 우려됐던 정유사들 중 에쓰오일이 1분기 영업이익 1조 2,311억 원으로 흑자 전환했습니다.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론 — 거래선 변경을 넘어선 산업 구조 재설계

한국의 원유 공급망 대응은 단순한 거래선 변경이 아닙니다. 장기 계약 구조, 정유 설비 특성, 운송 인프라, 글로벌 공급 흐름이 모두 얽혀 있는 산업 구조의 재설계 작업입니다. 정부가 단기간에 운송비 차액을 100% 보전하더라도, 중동 의존도를 의미 있게 낮추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부 업계에서 제기됩니다. 실제 소요 기간은 산지·계약·인프라 변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단순 산지 변경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단계는 단순 거래선 변경을 넘어 새로운 도입선 발굴과 산업 구조 유연성 확보로 옮겨가야 합니다. 동북아 전용 인프라(캐나다 서부·알래스카·러시아 극동)에 한·일·대만이 공동 투자하는 방안, 중남미 중질·경질유 혼합에 맞춘 설비 운영 매뉴얼 정비, 그리고 4대 그룹이 시작한 공급망 관리 체계 전면 개편이 함께 가야 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좁은 길목 하나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한국 산업의 공급망이 얼마나 정교한 균형 위에 서 있는지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 균형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가 향후 몇 년의 핵심 과제입니다.
참고자료
- 해사신문, 「중남미 원유 공급망 다변화 논의…정부, 정유업계와 간담회」, 2026.5.7
- 매일일보, 「[기획]脫중동 외치지만 원유 다변화 최소 2~3년」, 2026.4.29
- 에너지경제신문, 「도입선 다변화도 소용없다…중동 이어 유럽도 위험」, 2026.5.5
- 에너지경제신문, 「정부, “중동 외 원유 운송비 차액 지원…8월까지 연장 검토”」, 2026.5.9
- 매일일보, 「4대 그룹, 지정학 리스크 상시화에 공급망 관리 전면 개편」, 202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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