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미국이 던진 발언
“미 해군의 허가 없이는 누구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출발해 세계 어느 곳으로도 항해할 수 없다.” 4월 24일 워싱턴 기자회견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던진 발언이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우리의 봉쇄는 점점 커지고 있으며 글로벌하게 확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80년 가까이 미국이 자처해온 항행의 자유 수호자라는 역할이, 그 미국 자신의 입에서 부정된 순간이다. UNCLOS가 보장하는 통과통항권을 미 해군 허가제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한 매체는 이를 두고 “수십 년간 유지돼 왔던 미국 중심의 자유해양 질서가 얼마나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짚었다.

80년 동안 미국이 지켜온 자리
1982년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국제 해역에서 모든 선박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한다. 강제력 없는 국제법이 작동하려면 누군가 그 규범을 지키는 역할을 해야 했고, 미국이 그 자리를 자처했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시작된 항행의 자유 작전(FONOP)이 그것이다.
FONOP의 핵심은 단순하다. 해군 전함이 과도한 해양 주권을 주장하는 나라의 영해를 사전 통보 없이 통과한다. 그 자체로 그 영해 주장을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이지스함 한 차례 작전에 연료비만 160억 원이 든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80년간 이 작전을 유지해온 것은 자유 무역 질서 자체가 항행의 자유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중국해에서의 FONOP는 미·중 갈등의 상징이 됐다. 2016년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남해 9단선 주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한 이후, 미국은 FONOP 빈도를 끌어올렸다. 2017년 4회였던 것이 2020년 10회로 늘었다. 영국·일본·호주·캐나다·뉴질랜드·프랑스 같은 동맹국도 차례로 동참하면서 다국적 작전으로 격상됐다. 2026년 4월의 봉쇄 선언은 이 80년 흐름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결정이다.
미국이 이미 말라카에서 한 일
봉쇄 선언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4월 들어 미국이 실제로 한 행동에서 드러난다. 로이터통신은 4월 22일 여러 나라 해운·해양보안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며칠 사이 미국이 전 세계 바다에서 최소 3척 이상의 이란 선적 선박의 항행을 차단했다고 보도했다.
차단 위치가 의미심장하다. 이란 유조선 딥씨와 화물선 세빈은 말라카 해협에서, 유조선 도레나는 인도양에서, 또 다른 유조선 데리야는 인도 서쪽 공해에서 미군에 의해 항로를 차단당했다. 호르무즈에서만이 아니라 말라카에서도, 인도양에서도, 공해상에서도 이란 선적이라는 이유로 항행을 차단한 것이다.
이건 봉쇄의 글로벌 확대가 이미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행위들이 발생한 말라카 해협은 동북아 석유 공급량의 80%가 통과하는, 한국에 가장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미국이 그곳에서 항행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매체 르몽드는 이 흐름을 두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이란과 미국의 대치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시사한다”며 “그것은 바로 바다가 더 이상 열린 공간이 아니라, 다른 땅과 마찬가지로 영토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란도 같은 길로 가고 있다
미국만 명분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이란도 같은 시기 호르무즈 해협의 영토화를 가속하고 있다. 4월 20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이브라힘 아지지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 위원장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권을 “이란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명시하면서, 통제 강화를 위한 새로운 법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이란 헌법 110조를 근거로 하며, 이란 군대가 직접 시행할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의 통행 허가권을 이란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헌법 차원으로 격상한 것이다. UNCLOS의 통과통항권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결정이다.
미국과 이란은 정치적 입장에서 정반대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자기 통제 아래 두려는 행위에서는 명분상 거울이 되고 있다. 한쪽은 글로벌 봉쇄를, 한쪽은 헌법화를. 80년 자유항행 질서는 양쪽 모두로부터 도전받는 자리에 놓였다.
인도네시아 통행세 발언이 던진 화두

4월 22일, 인도네시아 푸르바야 유디 사데와 재무부 장관이 한 행사에서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우리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무역·에너지 항로에 있는데도 통행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르겠다.” 호르무즈 통행세를 모델로 말라카에도 통행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무장관은 “통행권은 모두에게 보장돼 있고 해협을 폐쇄하거나 통행료를 부과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말레이시아 외무당국도 “4개의 연안국이 모두 협력해야 하며 일방적으로 폐쇄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24일 인도네시아 측은 발언을 철회했다.
이 사건은 한 측면에서 안도할 만한 신호다. UNCLOS 기반 자유항행 질서가 여전히 국제 사회에서 작동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미 진행 중인 큰 흐름의 작은 한 사례에 가깝다. 미국 국방장관이 글로벌 봉쇄 확대를 선언한 같은 시기, 동남아의 한 재무장관이 통행세 발상을 공개 석상에서 꺼냈다는 것 자체가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르몽드의 표현을 다시 빌리면, 바다가 영토가 되어가는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중국과 양안 — 명분상 거울 구조
중국은 20년 넘게 두 가지 모순된 명분을 동시에 주장해왔다. 말라카 해협에서는 자유 항행이 보장돼야 한다. 자기 원유 90퍼센트가 그곳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에서는 외국 군함의 자유 항행을 거부해왔다. 후진타오 주석이 2003년 명명한 “말라카 딜레마”는 이 비대칭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이 비대칭은 미국의 FONOP에 도덕적 우위를 부여하는 근거였다. 그런데 미국이 호르무즈에서 자기 명분을 흔들고 글로벌 봉쇄까지 선언하자, 양안에서 외국 군함을 통제하려는 중국의 행위에 미국이 도덕적으로 반박하기 어려워진 구도가 만들어졌다. 중국이 새로운 카드를 손에 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자기 카드를 스스로 떨어뜨린 것이다.
이 변화가 양안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향후 신호로 읽힐 부분이다. 미군 함정의 대만 해협 통과에 대한 중국 측 반응이 이전보다 강해진다면, 호르무즈 선례를 양안에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한국이 처한 자해적 위치
한국 해상무역의 41.7%가 대만 해협 영향권이고, 동북아 석유 공급량의 80%가 말라카 해협을 거친다. 미국 LNG 수입 거의 대부분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다. 세 초크포인트가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국만큼 직격탄을 맞는 나라가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호르무즈 다국적군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4월 22일 정병하 외교부 특사가 테헤란을 방문해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을 면담했고, 이 자리에서 이란 측은 “호르무즈 해협 불안정의 원인과 책임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이 미국의 봉쇄 논리에 동조하는 모양새가 되면, 중국이 양안에서 행동을 강화할 때 협상력을 잃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미국이 호르무즈에서 자의적 통제를 한다면 한국 선박이 대만 해협을 통과할 때 중국의 자의적 검문에 어떤 명분으로 반박할 것인가. 이 질문이 한국 외교의 가장 어려운 자리에 놓여있는 것 같다.
스페인은 미군기지 사용을 거부하며 친이란 입장을 명확히 했고, 영국·프랑스는 35~40개국을 모아 호르무즈 항행의 자유 침해 대응 회의를 기획하는 등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이 어느 자리에 설지가 향후 한국 공급망의 운명을 결정할 변수로 보인다.
다음 호르무즈는 이미 예고되어 있다
한 분석은 이렇게 정리한다. “이란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이 전쟁은 이미 다음 호르무즈를 예고하는 지정학적 도미노의 방아쇠를 당겼다.” 4월의 사건들이 일회성으로 끝날지, 더 큰 흐름의 시작인지는 다음 두 가지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첫째, 미국이 글로벌 봉쇄 선언을 어디까지 실제로 적용할 것인가. 이란 선적에서 시작된 차단이 다른 명분으로 확장될 가능성. 둘째, 중국이 양안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미군 함정의 자의적 검문이 시작되면 호르무즈 모델이 양안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진짜 질문은 이거다. 80년간 미국이 지켜온 자유항행 질서가 미국과 이란 양쪽에서 동시에 무너지는 시점에, 한국이 가질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인가. 북극 항로 같은 우회 통로 옵션, 한국의 외교적 선택지, 동남아 국가들과의 양자 협의 강화 — 이런 선택지들에 대해서는 별도 글에서 다뤄볼 생각이다.
바다가 영토가 되어가는 시대에, 한국은 어느 자리에 설 것인가. 5월에서 6월 사이의 신호들이 그 답을 알려줄 것 같다.